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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두 번째 포스팅입니다. 지난 시간에 병인양요와 신미양요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그럼 이번 시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자 불평등 조약인 강화도 조약과 그로 인해 발생한 임오군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강화도조약

1875년 일본은 군함인 운요호를 끌고 조선의 강화도 부근으로 침입을 합니다. 메이지 유신 이후로 일본은 이전에 미국과 프랑스가 우리나라와 수교를 맺기를 원했던 것처럼 조선과 수교를 맺기 위해 무력으로 군함을 동원하였습니다. 이때 일본군과 조선군의 충돌이 일어났고 일본은 사태의 책임을 조선이 질 것을 강력하게 요구합니다. 이를 운요호 사건이라고 합니다. 그 당시 조선에서는 문호를 개방해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통상 개화론자들과 흥선대원군의 뜻처럼 묻을 닫는 정책인 위정척사론자들이 대립하고 있었습니다. 이 시기의 왕이었던 고종과 그의 부인은 통상 개화론 쪽으로 마음이 기운 상태였고 당시 상황상 일본의 압박에 못 이겨 1876년 2월 27일 조선 측 대표인 신헌과 일본 측 대표인 기요다카 사이에 12가지의 조약을 체결하게 되었습니다. 조약의 내용은 철저하게 일본에 유리하였습니다. 대표적으로 '1조 조선은 자주국이며 일본과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 내용만 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이 시기 조선은 중국과의 관계가 상당히 좋았고 일본 입장에서는 중국(청나라)이 조선에 개입하는 것이 매우 불편했습니다. 이 둘 사이의 연결고리를 끊어놓기 위한 속셈이었던 것입니다. '4조 부산 외 2곳을 개항하고 일본인이 왕래 통상한다.' 일본의 목적은 조선과 교역을 하기 위한 것이 가장 컸습니다. 그래서 일본과 가까운 부산을 개항하고 군사적 요충지인 원산, 서울의 길목인 인천을 개항합니다. '7조 일본은 조선 연안을 마음대로 측량할 수 있다. 이는 조선을 지속적으로 감시하겠다는 내용입니다.' 마지막으로 '10조 일본인이 조선 항구에 머무를 때 죄를 범하면 모두 일본 관원이 심판한다.' 이를 다른 나라에 사법권이 있다고 해서 치외법권이라고 합니다. 이 조항은 일본인의 범죄에 대해 조선이 관여할 수 없다는 것이고 이는 후에 유명한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시해에 가담한 일본인들을 조선이 처벌하지 못하는 근거 조항이 됩니다. 산업화된 일본에서 공산품이 대량 유입되고 일본은 대신 우리나라의 주식이었던 쌀을 대량으로 수입해갑니다. 이 결과로 쌀이 부족해지자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집니다.

 

2. 임오군란

 

사건의 발단은 구식군대와 신식 군대인 별기군의 차별이었습니다. 일본과의 강화도 조약 이후 조선은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이 아닌 개화 정책을 시행하게 되면서 외국과 교역을 확대하게 됩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강화도 조약으로 인해 쌀값은 폭등하고 일본으로부터 수입한 값싼 공산품으로 인해 조선 내의 수공업이 몰락하여 백성들의 삶은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었습니다. 이때 신식 군대인 별기군은 새로운 옷과 신식무기 그리고 급여도 훨씬 많았습니다. 이에반에 구식군대는 월급조차도 밀린 상태에서 받은 것이 쌀이었는데 먹을 수 없는 모래를 섞어 지급하다 보니 불만이 극에 달했습니다. 이 당시 권력은 고종과 민씨에게 있었고 개화 정책으로 인해 피폐한 삶에 분노한 하층민과 구식군대는 힘을 합쳐 반란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일본공사관을 습격하고 궁궐에 난입하여 명성황후를 잡으려고 하였지만 명성황후는 피신하였습니다. 이 일은 반란과 같은 일이다 보니 사태가 수습되면 주축세력들은 큰 벌을 받을 것이 자명하였고 이들은 본인들의 신변을 보호해줄 인물이 필요했는데 그 사람이 바로 흥선대원군이었습니다. 대원군은 조선이 개화 정책을 펼치게 되고 본인의 권력이 고종과 민씨에게 넘어간 상태에서 임오군란의 힘을 입어 다시 권력을 잡게 됩니다. 하지만 명성황후가 청에게 군란을 제압해달라는 도움을 요청하고 결국 청나라 군대에 의해 임오군란은 진압되고 대원군은 납치돼 청나라로 보내지고 맙니다. 이 일은 청나라가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한층 더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고 조선 백성들의 지지를 받는 대원군을 납치애 민씨 정권이 다시 권력을 잡는다면 조선의 지배가 더욱 쉬워질 것이라고 예상하였습니다. 이후 조선에 대한 청나라의 간섭은 더욱 심해졌고 결국 청과 조선은 '조청 상민 수륙무역장정'이라는 조약을 체결하게 됩니다. 이 조약 또한 불평등 조약이며 조선은 일본과 청의 지속적인 간섭을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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