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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오늘은 낮이 가장 길다는 절기인 하지입니다. 날씨가 정말 더워졌네요. 오늘 4시경부터 2020년대 마지막 일식이 일어난다고 하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보시기 바랍니다. 지난번 포스팅에서는 외세로부터의 독립과 부정부패를 타파하기 위한 운동이었던 동학농민운동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이 민란으로 인하여 조선 정부는 청나라 군에 도움을 요청하였는데 이때 텐진 조약에 의해 일본군도 조선에 군대를 파병하였습니다. 두 나라 군대는 조선의 민란을 진압한다는 명분이었지만 실상은 서로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조선은 청나라와 일본의 군대에 부담을 느끼게 되고 때마침 정부군과 동학농민군 사이에 전주화약이 맺어져 두나라 군대가 간섭할 구실이 없어졌습니다. 따라서 청나라 군대와 일본 군대는 공동 철수에 합의하게 됩니다.

 

청일전쟁

 하지만 쉽게 물러날 일본이 아니었습니다. 일본은 청나라와 전쟁을 일으켜 승리하여 조선에 대한 청나라의 간섭을 막고 싶어 했습니다. 그리하여 군대를 철수하는 대신에 어지러운 조선의 내정을 청나라와 공동으로 개혁하자는 안을 청나라에 제안합니다. 하지만 청나라는 거절하고 일본은 단독으로 조선의 내정을 개혁하기로 합니다. 러시아와 미국이 일본군의 철수를 요구하였지만 거절하고 쿠데타를 일으켜 경복궁을 공격하고 흥선대원군과 김홍집 등을 앞세워 친일 정권을 수립합니다. 이로써 청일전쟁이 발발하게 됩니다. 일본군은 조선 정부의 요청을 받은 것처럼 위장하여 아산만에 주둔 중이었던 청나라 군대를 공격합니다. 아산만 앞바다에 있는 '풍도'에서 청의 함정을 공격하여 청나라 군사 1,200여 명이 익사를 하게 되고 이로써 전면전에 돌입하게 됩니다. 그 이후 평양 전투에서 일본군은 청나라 군을 격파하였고 해군이 황해 전투에서 청나라 함대를 격침시켜 청나라는 패주 하게 됩니다. 조선에서의 전투를 승리로 가져간 일본은 서둘러 중국 본토를 향해 진출합니다. 일본의 제1군은 압록강을 건너 남만주로 진격하고 제2군은 랴오둥 반도에 상륙하여 뤼순, 다렌 등을 점령하였습니다. 계속되는 패전에 다급함을 느낀 청나라는 전쟁을 마무리짓기 위한 회담을 서두르게 됩니다. 하지만 두 차례 열린 '히로시마 회담'에서 일본 측은 자국에 더욱 유리한 조항을 가져오기 위한 목적으로 교섭을 거부하고 전투를 재개하였습니다. 그 결과 일본군은 랴오둥 반도를 완전히 장악하게 됩니다. 일본도 영국, 프랑스, 미국, 러시아 등 서부 열강의 간섭을 우려하여 결국 3월 20일 시모노세키에서 청일 강화조약 즉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시모노세키 조약'이 맺어지게 됩니다. 

 

시모노세키조약

 청일 전쟁에 의해 맺어진 시모노세키 조약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청국은 조선국이 완전 무결한 독립자주국임을 확인한다.' 이는 청나라가 더 이상 조선에 대한 내정간섭 및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도록 하는 것입니다. '2. 청국은 랴오둥 반도, 대만 평후 열도 등을 일본에 할양한다.' 청일전쟁으로 인해 점령된 지역을 일본 영토로 편입한다는 내용입니다. '3. 청국은 전비 배상금으로 고평은 2억 냥을 일본에 지불한다. 이는 승전에 대한 대가로 엄청난 양의 배상금(청나라 1년 예산에 약 2.5배)을 지불하라는 것이었습니다. '3. 청국은 일본에게 구미 열강이 청국에서 누리는 것과 동등한 통상상의 특권을 부여함을 승인한다.' 이렇게 4가지였습니다. 하지만 만주로의 진출을 노리는 러시아의 입장에서 일본이 라오듕반도를 장악하는 것에 부담을 느꼈고 프랑스, 독일도 이에 동조하여 일본을 압박하게 됩니다. 일본은 서부 열강들의 간섭에 부담을 느끼게 되고 라오듕반도의 영유권을 포기하고 배상금 3000만 냥을 받는데 합의하였습니다. 청일전쟁과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인하여 동아시아의 정세는 일본 쪽으로 유리하게 흘러가게 되었으며 중국의 영토 일부를 식민지로 확보하고 제국주의의 발판 및 향후 러일전쟁의 교두보를 확보하게 됩니다. 또한 승전금을 통해 군비확장을 하게됩니다. 일본으로써는 큰 이득을 본 전쟁이었습니다. 하지만 청나라는 이 전쟁으로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잃음과 동시에 이후 제국주의 열강들의 침략을 받게 됩니다. 조선의 경우 청나라에서 일본으로 지배권이 넘어가게 되고 이후에 명성황후가 시해를 당하는 듯 일본으로 부터 큰 피해를 입게 됩니다. 하지만 이후 갑오개혁을 통해 전통적인 신분제도가 약화되고 우리나라가 근대적인 모습을 갖추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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